저는
한국의 COVID-19 확산세가 정점을 향하여 치닫고 있던 지난 2월말 가족을 이끌고 부산에서 출발하여 휴스턴에 도착하였습니다. 미국 입국 자체가 무척이나 불투명했던 당시를 과거의 기억으로 떠올릴 수 있는 지금의 순간들은 저희 가족에게
거저 주어진 선물과도 같습니다. 가슴 깊은 울림으로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위대한 유산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신 휴스턴서울교회와 목장 식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해
말, 제법 오랜 기간 근무하던 직장을 1년간 휴직하고 영어
연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 젊지 않은 나이이지만, 학생 시절 가슴에만 품었던 미국 땅을 잠시잠깐이라도 밟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국내 생활을 일순간이나마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낯선 땅으로 떠나야하는 걸음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목적지도 준비되지 않은 막연한 상황에서 어려운 조언을 구하고자 평소 존경하던 지도교수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늘 목자와 같은 마음으로 학생들을 돌보아 주시는 교수님이신지라 여러가지 상황들을 소상히 말씀드릴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신앙의 성장, 배움의 기회, 가족 단위의 생활 여건 등을 두루 고려하시어 연수 지역으로 텍사스 휴스턴과 함께 당신이 목자로 섬기셨던 휴스턴
서울교회를 소개하여 주셨습니다.
이
후, 이어지는 따뜻한 도움과 사랑의 손길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교수님을
통하여 인사를 드리게 된 윤명희 목자님께서는 일면식도 전혀 없던 저에게 휴스턴에 단기간 정착할 수 있는 생활 환경을 만들어 주시고자 동분서주 뛰어
주셨습니다. 저희 가족이 거주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을 함께 고민해 주시고 계약 조건이 좋은 아파트가
매물로 나오면 그 바쁜 시간들 속에서도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현장을 꼼꼼하게 점검해 주셨습니다. 또한
거의 매일 국제전화를 통해 심리적으로 다소 불안정했던 저를 다독여 주시고 국내에서 진행하고 있던 준비상황들을 세세하게 챙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 가족의 마음과 영혼이 편히 쉴 수 있는 지금의
마나구아 목장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오기준 목자님 오영민 목녀님을 비롯한 목장 식구들은 COVID-19가 전 세계에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던 엄중한 시기에 저희가 안전하게 휴스턴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한 마음으로 기도해 주셨습니다. 단편적인 글 속에 모두 담아내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사랑과 섬김을, 단 한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는, 그리고 오로지 랜선을 거쳐야만
소통이 가능했던 저를 위해 아낌없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역만리에서 전해진 사랑과 섬김으로 그렇게 저희
가족은 무사히 휴스턴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입국
첫날 밤, 마나구아 목장의 오기준 목자님과 오영민 목녀님께서는 저희 가족이 오랜 비행시간으로 인하여
행여 배가 고프지 않을까, 행여 미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까 염려하시며 여러 가지 한국 반찬과 더불어
따뜻한 쌀밥으로 한가득 채운 전기밥솥을 통째로 전해주고 가셨습니다. 또한 수시로 연락하시어 낯선 땅을
딛고 서 있는 불안한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수시로 방문하시어 먹거리는 떨어지지 않았는지 생활에 불편함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주시고 이를 채워주셨습니다. 입국 초기 자체 자가 격리로 인하여 마트에 자유롭게
출입하기 어려울 때면 목자님 목녀님께서 각종 식재료와 음식들이 한아름 담긴 커다란 상자를 품에 안고 찾아오셨습니다. 자녀의 학교 등록 문제로 허둥지둥할 때면 목장 식구들이 학교로 직접 방문하여 기꺼이 도와주셨습니다. 알 수 없는 스트레스로 인하여 두통을 호소할 때면 목장 식구들이 한국에서 공수한 우황청심환을 손에 꼭 쥐어주고
가셨습니다. 진솔한 대화가 필요하고 따뜻한 조언이 필요하고 자녀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할
때면 목장 식구들이 어느새 먼저 문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미국 생활이 얼마나 치열하고 바쁘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주기에는 일분 일초가 너무나 아까운 시간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은 섬기는 삶을 “봉사와 희생”이 아니라 그 자체로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언젠가
미국 어느 도시에서 크리스마스 즈음 있었던 일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습니다(아주 오래 전 이야기라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한 차량의 운전자가 유로도로 요금소를 통과하면서 “뒤에 오는 차량의 요금까지 함께 계산하겠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말해주세요.”라며 자신이 지불해야 할 요금의 두 배가 되는 금액을 징수원에게 건냈다고 합니다. 곧이어 요금소로 진입하여 이 말을 전해 들은 다음 차량의 운전자는 “오! 정말 멋진 선물이군요! 그럼 저는 제 뒤에 오는 차량의 요금을 지불하겠습니다. 저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하고 싶네요.” 라고 말하며 본래 본인
몫에 해당하는 요금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선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요금소를 통과하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따듯해지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휴스턴
서울교회가 지향하는 성경 속 가치를 푯대로 삼고 살아가는 지도교수님, 목자님, 목녀님, 목장 식구들을 통해 결코 마르지 않고 전해지는 위대한 유산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방법으로 왜 예수님께서 화려하고 위대한 정복자가 아닌
사랑과 섬김의 종으로 오시기를 선택하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왜 영원할 것이라 여기던 제국의 힘은 역사의
모래 속으로 흔적없이 사라지고, 왜 한없이 낮은 것이라 여기던 십자가만 찬란하게 남아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는”
것으로 가슴 벅차해 하시던 목사님의 눈물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휴스턴서울교회와
목장 식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지더라도 당신의 사랑과 섬김은 위대한 유산으로 영원토록
아름답게 이어질 것입니다. 하늘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