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부터 Harris County Stay at Home이 시작됐으니, Stay at Home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이제 거의 두 달이 됐네요. 그동안에 집 바깥으로 꼭 나가야할 중요한 목적이 있을 때에만 나가고, 나가게 될 때에는 마스크를 장착하고, 나가서는 사람들과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집에 돌아오면 손을 씻는 등등, 항상 위험의 가능성에 대해서 신경을 쓰면서 살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마트에서, 교회에서 사람들을 마주칠 때 신경을 써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누가 코로나에 걸렸고 누가 걸리지 않았는지 (심지어 나 자신이 걸렸는지)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돌아보면서 저는 요즘 생활이 이라크에 파병 갔을 때의 상황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고로, 계속해서 군대 얘기만 하면 꼰대 티가 너무 나니 자재해 달라고 아내가 얘기했지만, 제가 꼰대인 것은 이미 들통난 것 같습니다 ^^;
2004년에 첫 파병을 갔을 때 저는 보병 소대장이었습니다. 저희는 임무를 실행하기 위해서만 기지 밖으로 나갔고, 나갈 때에는 제 몸무게의 반 정도 되는 장비로 전신무장을 했고, 나가서도 현지인들과 적당한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했고, 기지에 돌아와서는 장전했던 총알을 안전하게 빼야 하는 등등, 항상 위험의 가능성에 대해서 신경을 쓰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순찰을 나갔을 때 긴장을 늦추지 못했던 것은 누가 반군인지, 누가 그냥 민간인인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지 밖으로 나갈 때 마다 느꼈던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던지, 저는 그 당시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교회도 다니지 않았지만, 지푸라기라도 짚는 심정으로 기지 밖으로 나갈 때 마다 매번 기도를 하고 나갔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나서 그런지, 요즘 주변에서 일 때문에 매일 사람들과 접촉을 하 셔야 하는 분들께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계실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의료계에서 직접 코로나 환자와 접촉이 있는 분들을 생각하면서 참 감사하고, 자랑스럽고, 또한 안스러운 마음들이 교차합니다.
거의 매일 순찰을 나갔던 첫 번째 파병과는 달리, 두 번째 파병을 갔을 때는 대대의 인사참모로 파병을 갔기에, 전투부대이기는 했지만 거의 일반 사무직에 가까운 보직이었습니다. 기지 밖으로 순찰을 나갈 일은 아예 없었고, 그렇기에 전신무장을 걸칠 일은 드물었으며, 대대 내에서 그보다 더 안전한 직책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제가 이라크에서 부상을 당했던 것은 첫 번째 파병이 아니라 두 번째 파병이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파병 중에 순찰을 돌고 있거나 작전을 실행하는 도중에 부상을 당했더라면 그것에 관련된 멋진 이야기 거리라도 생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부상을 당하게 된 것은, 기지내의 사무실에서 업무를 끝낸 후 동료와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구내 식당으로 가는 도중에 반군들이 저희 기지를 향해서 쐈던 로켓 몇개 중에 하나가 제 근처에서 폭발을 하면서 파편이 제 팔과 허벅지에 박히게 됐 된 것입니다. 첫 번째 상황이 더 위험해 보이고, 그렇기에 만반의 조심을 한 반면에, 두 번째 상황은 상대적으로 훨씬 안전했지요. 그런데 위험해 보이던 상황에서는 상처 하나 없이 무사했는데, 마음을 놓고 있었던 두 번째 상황에서는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다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요 근래 문득 생각이 난 것이 있는데, 어쩌면 그랬던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상황에서는 제가 믿음은 없었지만, 저 자신의 생명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면서 기도로 매달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상황에서는 제가 제 상황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것을 믿고는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는 교만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있었을 때는 위험한 상황에 불구하고도 안전했는데,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있지 않았을 때에는 안전하던 상황과 상관없이 부상을 당했던 것이지요.
감사하게도, 부상당했던 것을 돌아보면 힘들었던 것 보다 감사한 것이 훨씬 많았습니다. 몇 미터 간격으로 죽거나 크게 다칠 수 있었는데도 경상으로 끝난 것이 감사하고, 회복하는 몇일 동안에는 편하게 쉴 수 있었기에 감사했고, 그 후에는 연대 본부로 전근되어서 더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전역할 것을 결정하는 것에서도 부상당했던 것이 이유 중 하나가 됐었고, 덕분에 휴스턴으로 직장이 잡혀서 오게 됐고, 궁극적으로 저희 목장과 교회를 만나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부상당함으로써 받았던 Purple Heart 훈장 덕분에 Harris County에서 Toll Road를 공짜로 탈 수 있고, 공항에서는 파킹비를 내지 않기에, 일년에 천불 이상의 돈을 아낄 수 있습니다.
예전에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하신 말씀 중에 이런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 우리가 고난을 힘들어하는 이유는, 그 것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요. 하지만 고난이 끝난 후에 엔딩을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해 주셨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것을 잘 넘길 수 있다고 하셨지요. 저도 당시에 부상당하고 싶지는 않았고, 부상을 당했을 때에는 두렵고 떨렸습니다. 하지만 부상당한 후에 일어난 일들을 돌아보면, 그것이 그 순간에는 힘들었지만, 길게 봤을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코로나 사태가 언제, 어떻게 끝날 것인지는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직장과 사회와 교회가 단계별로 열려가면서 저희는 계속 변화되는 규정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그때 마다 스트레스가 반복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속에서 저희를 위한 가장 선한 것을 계획하고 계시고,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지금도 일하고 계신 하나님께서 저희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생각을 되새기면서 마음의 평안을 지켜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 눈에 보이는 상황에 좌우되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머물면서 그 시간을 지내려고 노력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