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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이 끝나고 어떤 분이 한 질문" <8. 29. 2021> E-Sub.

글쓴이 : 이수관목사 날짜 : 2021-08-28 (토) 16:29 조회 : 658
 

지난 금요일로 중반기 생명의 삶이 끝났습니다이번 생명의 삶에는 마지막 시간에 올 때한명도 예외 없이 질문을 한 개씩 작성해서 오라고 부탁했습니다수업 중에는 질문 시간이 부족한지라 마지막 시간에는 질문지를 빠르게 읽고 답을 해 드리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인데많은 분들이 질문지를 내지는 않았고저 역시도 깜빡 잊고 수업을 끝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나니 숙제와 함께 제출한 이번 기수에서 딱 한 분 영접을 하지 않으신 분의 질문지가 있었습니다질문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믿는 사람도 있는 반면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되지 않아 괴로움 속에서 살다가 죽는 사람도 많습니다이처럼 삶속에서는 응답이나 상급도 약속되지 않는 법인데무엇을 근거로 사후에 자신이 원하는 상급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혹시 교회는 안 나오시더라도 목회자 코너는 어떤 식으로든 볼 수도 있지 않겠나 싶어서 여기에 답변을 올려 봅니다질문은 두 파트입니다믿는 사람도 기도가 응답이 안 되어서 괴롭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이 세상에서 안 이루어지는 기도 제목이 다음 세상에서는 이루어진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하는 것이지요

 

첫 번째 파트에 대해서는 제가 반대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 분들이 괴로움 속에서 산다는 것은 무슨 근거로 그렇게 얘기하는가 하는 것입니다제가 보기에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 비해서 그 고통을 훨씬 더 잘 이겨냅니다특별히 소명이 있는 경우는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믿음이 없는 분들은 항상 바깥에서 보면서 봐라저들도 고통을 겪고 있지 않는가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라고 하지만정작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매일의 삶에서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화를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파트는 개인의 믿음의 부분이기 때문에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그걸 확신으로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증명을 하라고 하면 방법이 없습니다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아들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 아버지와 그 사랑을 확신하는 아들이 있습니다아버지는 아들에게 때가 되면 사업을 물려주겠다고 약속했고아들은 그걸 믿고 있습니다그럴 때 어떤 사람이 와서 너희 아버지가 그걸 물려 줄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는가아버지들은 늘 말은 그렇게 하지만 결국에는 속여너희 아버지도 그럴 거야라고 하면 증명할 도리는 없습니다

 

하지만아들은 압니다지난 30년 동안 아버지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그 분의 신실하심을 경험했고도움이 필요할 때 채워주셨던 아버지를 경험했고그 분이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지요그런 모든 경험을 통해서 나는 확신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그것은 그 관계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만 아는 것입니다아버지와 나우리끼리만 아는 것이지요.  

 

반면에 그 아들은 의심하는 사람을 보면서 안타까워 할 것입니다. ‘세상에.. 어쩌다 아버지를 의심하게 되었을까..? 아버지와의 따뜻한 신뢰 관계없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말이지요신앙은 바깥에서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상 절대 생기지 않습니다바깥에서 의심하지 말고 직접 안으로 들어와 보면 좋겠습니다.  

 



A QUESTION FROM A BIBLE STUDY STUDENT

 

As of last Friday, the Living Life bible study class was over.  For the last class, I asked all students to prepare a question without exception.  There isn’t enough time for questions and answers during classes, so I thought that I will answer questions during the last class, but many did not submit questions and I also forgot, and the class was over.

 

There was only one student in this class who did not accept Jesus and he submitted question along with his homework.  His question was as follows.

 

‘Some think that their prayers were answered.  On the other hand, there are many who did not get their basic needs met and die after long time of suffering.  Likewise, there is no answer or reward in life, so what is the basis of reward in after life?’

 

He may not come to church, but he could read pastor’s corner, so I post answer to his question.  The question has two parts.  Some believers suffer because of unanswered prayers and how to know those unanswered prayers will be fulfilled in the next life.

 

As for the first part, I want to ask back to him.  I agree that among believers there are some who did not get their basic needs met, but what is the basis of stating that their lives are in suffering.  In my opinion, believers can endure difficulties much better than non-believers.  If they have a calling, trials are not that important and many live in unexplainable joy. 

 

Non-believers who observe from outside may say, ‘Look! Aren’t they suffering also?  Where is God?’  However, believers live their daily lives with great encouragement and peace which cannot come from this world in spite of their difficulties.

 

The second part cannot be proved since it belongs to individual’s faith.  The confidence which believers have comes from the relationship with God, so there is no way to prove it.  This is an example.  Let’s say that there is a loving father and a son who trusts his father.  Father promised his son that when the time comes, his son will inherit his business and the son believes him.  If someone comes and challenges the son saying, ‘How do you know that your father will let you have his business?  Many fathers may say that, but at the end it did not happen.  Your father will be the same.’  Then, there is no way of proof.

 

However, the son knows.  He knows because he experienced his father.  He experienced his faithfulness, experienced his help when he needed, and he also know that his father loves him more than anybody.  Based on all those experiences, he can say, ‘Yes, I know!’  That is all he can do.  This conviction is only for those who are in the relationship.  In other words, it is only between father and me. 

 

On the other hand, the son feels sorry toward the one who question.  ‘Ah, how come he cannot trust his own father?  How can you live this life without the trusting relationship with father…?’  It is not possible to gain faith as long as you stay outside with suspicious eyes.  Things can make sense if you give up the suspicion and come inside.   



김대웅 2021-08-29 (일) 00:33
목사님의 답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반문하신 점도 있고 하여 감히 답변을 적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부분에 대하여 여쭈신 저의 근거는 저의 친인척 및 지인들 다수의 직접적 경험입니다.
그 중 한 예로, 저희 어머니는 근 35년에 걸쳐 삶 가운데 온갖 정신/육체적 폭력, 혹사, 부당한 경제/사회적 감금 등을 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노후에는 암 투병 끝에 제 눈 앞 병상에서 괴로움의 정점을 보여주고 가셨습니다. 워낙 온유한 성품으로 칭송 받던 분이라 그나마 육체만 괴로웠고 마음은 평온 하셨으리라 생각했으나, 제가 사후 처리 차 정리한 어머니의 사무실 책상에서 발견된 일기 속에는 수십 년간 해소되지 않는 고통이 가득했습니다. 35년의 인고 끝에 "승리"란 없었습니다. 다른 분들의 예도 일맥상통 합니다.

고난 속에도 평화롭게 사는 성도가 많다고 반대 조건의 일반화를 하셨는데, 이에는 두 가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1. 그 예시의 주된 표본은, 생존 등과 같은 수준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겪는 이들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그 정도로 온건한 과제를 고난이라 논한다면, 당사자들은 굳이 종교적인 설명을 찾지 않아도 자연히 일어났을 법한 사건들의 전개 속에서 단지 자신의 종교관에 부합하는 긍정화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존재에서 오는 특수한 정당성은 없다 볼 수 있습니다.
2. 이 논제에 있어 긍정의 다수에 반하는 다수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는 긍정을 무효화하지는 않습니다. 생전 극도로 채움을 받지 못하는 다수와 온전한 충족으로 평화롭게 사는 다수의 공존을 기정한다면, 이는 적어도 이 세상에 "상급"에 대한 확실성은 없다는 증거가 됩니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현생에서도 긍정화 하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 사상을 일절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후 세계관에 대입한다는 것은 결국 말씀하셨듯 "믿음"의 현상임에 동의합니다. 단 그 믿음의 근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고 사료합니다.

둘째 부분도 상기 2번과 같은 맥락입니다. 충족을 받아왔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믿기 쉬운 조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여만을 알아온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 아들이 아버지의 따뜻함을 운운하며 혀를 차는 동안 반대편 아들은 아버지의 이유 없는 구타를 받고 있다면, 묘사하신 그 부자 관계의 이중성이야 말로 공감대를 달리 한 이들 사이를 갈라놓은 부족 제도의 단면일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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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관목사 2021-09-02 (목) 16:02
아, 답을 달아 놓으셨군요. 내가 어딜 좀 다녀 오느라 늦게 보았습니다.

그랬군요... 어머니를 보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군요. 어머니에 대한 일은 안타깝네요.
글쎄요. 어머니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았던 제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몇가지를 얘기한다면...

김대웅님이 읽었던 어머니의 일기는 어쩌면 그것이 끝이 아닐지 모르겠다 싶습니다. 성경에 보면 욥이라는 사람의 얘기가 나옵니다.
욥기는 42장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욥의 반전과 깨달음은 42:1-6절까지이고 그 전까지의 모든 얘기는 괴로움과 해소되지 않는
욥의 고통으로 가득합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마지막 반전을 그 일기에 적어 놓을 시간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즉, 김대웅님은 어머니의 일기의 마지막 6절을 읽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고통을 견디는 사람은 생존의 근본적인 문제를 겪은 사람이 아닐거라고 했는데, 기독교 역사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고문을 당하고, 목 베임을 당하고, 짐승에 찢겨 죽으면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예는 수백건을 넘어 수천건입니다.
1세기에 로마의 관리였던 플리니 라는 사람이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아무리 때려도, 또 죽음의 협박도 그들의
기쁨을 빼앗을 수가 없다라고 고백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김대웅님이 경험한 표본이 비교할 수없을 만큼 훨씬 더 적습니다.

마지막으로 물론 현실의 고통은 그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믿음이 그것을 경감시키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힘은 분명 그것을 이겨낼 힘을 줍니다. 물론 죽을만큼의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고통을 겪어본 저의 경험은 분명히
그렇다고 말을 합니다. 또한 인생을 사는데 훨씬 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하나님의 만나기 전의 삶과 비교해 보면 저의 경험은
분명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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