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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한지 30년 되었어요." <11. 17. 2019> E-Sub.

글쓴이 : 이수관목사 날짜 : 2019-11-16 (토) 19:13 조회 : 452
 

아내와 저는 1982년 대학 캠퍼스에서 만났습니다저는 1년 재수를 했고아내는 고교 졸업 후 바로 입학을 했기 때문에 같은 학년에 나이는 제가 한살 많았습니다입학식과 더불어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3월 하순의 어느 날라일락꽃 향기가 짙게 날리던 교정에서 저희는 만났습니다그리고 그 해 8월경부터 본격적으로 데이트를 시작해서 결혼하기까지 7년을 사귀었습니다

 

저는 대학 3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습니다카투사 (‘미육군 소속의 한국군을 줄인말)로 동두천에서 근무를 했는데그 동안 아내는 졸업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틈만 나면 그 멀리까지 면회를 와 주었습니다당시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차를 타고의정부에서 다시 갈아타고동두천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야 올 수 있는 곳이었지만 당시 아내는 거의 매주 도시락을 예쁘게 싸서 혼자 혹은 처형과 함께 면회를 오곤 했습니다

 

복학을 하고서도 우리의 데이트 비용은 직장생활을 하던 아내의 몫이었고당시 턱없이 부족한 용돈을 채워준 사람도 다름 아닌 아내였습니다. (당시는 대학생 아르바이트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던 시절입니다.)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6년을 기다려준 아내를 생각해서 바로 취업을 했고, 1년 후인 1989년 11월 어느 첫 눈이 펑펑 내리던 날 결혼을 했습니다

 

부모님의 도움이 거의 없이 결혼을 했던 저희는 본가에서 1년을 살고는 분가해 나와서 당시 우리의 형편으로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메었는데결국은 인천 근처의 한 전철역 뒤 언덕위에 있는 조그마한 반 지하 연립주택에서 저희들만의 보금자리를 꾸릴 수 있었습니다그 무렵에 우연히 작은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그렇게 저희는 함께 하나님을 만나갔습니다침대에 누어서 얘기를 나누다가도 하나님 얘기만 나오면 구원받은 감격으로 번갈아가며 눈물을 흘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사회 초년병 시절을 둘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덕분에 회사에서는 인정도 받았고승진도 빨랐습니다동시에 교회를 열심히 섬겼습니다그렇게 신앙생활도회사생활도 열심을 다하던 저희를 조금은 예쁘게 보셨던지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의 삶을 안정으로 이끌어 주셨고저희는 그 여유로 매년 몇 정거장씩 서울을 향해서 이사를 갈 수 있었습니다

 

1998년 3월에 미국으로 발령을 받아 보스턴에 왔다가 그 해 9월경 당시 컴팩이라는 컴퓨터 회사와의 새로운 비지니스를 찾아 휴스턴으로 이사했습니다될지 안 될지 앞길을 알 수 없는 비지니스내일이라도 안 되면 짐을 싸서 떠나야 할 것 같은 그런 불안함으로 공항에 내렸습니다우여곡절 끝에 하나님은 길을 열어 주셨고그 후 몇 년간 비지니스가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아내의 실명 선고그런 가운데 11년간의 싱글목장 시작그리고 한국에서 모아 두었던 돈이 IMF 사태로 모두 사라져 버린 상태에서의 신학으로의 부르심그리고 지난 십 수 년간의 목회자로서의 삶.

 

긴 시간을 함께 울고웃고때론 마음 조리고아픔을 겪어내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그러는 동안 아내의 예쁘고 곱던 모습은 많이 사라져 버렸지만그 모든 것이 나에게 시집와서 함께 고생해 주고희생해 준 결과이고내 책임이다 싶어서 요즈음은 특히 더 미안하고고맙고애틋한 마음입니다

 

둘 만의 3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서 오늘 (주일) 저녁에 출발해서 금요일날 돌아오는 여행을 갑니다이 여행을 위해서 올해는 여름휴가를 안 가고 아껴두었고, 30주년은 진주혼이라고 하기에 작은 진주 목걸이도 샀습니다아내는 목걸이를 싫어하기 때문에 안 할것 같지만주는 것 자체로 진심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THIRTY YEAR WEDDING ANNIVERSARY


My wife and I met on a college campus in 1982.  I entered college a year after high school graduation while my wife entered right after high school graduation, so we were the same grade, but I was one year older.  Not long after the semester started, around the end of March, we met in the campus which was filled with the fragrance of lilac blossoms.  We started dating from August of that year and it took 7 years before we got married.


After finishing 3 years of college, I did mandatory army service in KATUSA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 which was stationed in Dongducheon.  During that time, my wife graduated and had a job and whenever she had a chance she came to visit me despite the long distance.  At that time, she had to take a bus from the out of town bus terminal, change buses at Uijeongbu and take a taxi from Dongducheon.  Despite the distance, she came almost every week, sometimes alone and sometimes with her sister, and brought me a delicious lunch box which was also pretty.


When I returned to school, my wife ended up covering most of our dating expenses since she had a job and even covered for my shortage in spending money.  (At that time, getting any part time job was illegal for college students.)  I wanted to go to America to continue my study but considering my wife who waited for me for 6 years, I could not do that.  Instead, I found a job and a year later, in November of 1989, we married.  It was the first snowy day of the year.


Without much help from our parents, we got married and lived with my parents for one year.  After that, we looked for a place we could afford, which was a small underground condo near Incheon.  At that time, we started to attend a small church and that was how we met God.  It was a time when we used to be overwhelmed by the appreciation of salvation and weep together frequently as we share. 

   

As newcomers in the business world, I worked hard.  Thanks to that, I was recognized at work and promoted quickly.  We also served with all our heart in church.  God blessed us as we were doing our best in church and at work and our finance improved and we could move to a home closer to Seoul.

  

In March of 1998, I was transferred to the US branch in Boston and in September, we moved to Houston seeking business opportunities with a computer company called “Compaq”.  When we arrived in Houston, it was with anxious hearts because the future of the business was uncertain, and the situation was that we had to leave Houston if the business did not work out.  God opened doors after many twists and turns and few years laster, business blossomed.  Then, diagnosis of my wife’s future blindness, serving single house church for 11 years, calling to ministry when we lost all our life savings through the economic down turn during IMF and then life as a pastor followed.


Truly, we lived long years together sharing laughter, tears, anxiety and much pain together.  Through that time, my wife’s pretty features faded, but I know it is all because she married me and had so much hardship and made sacrifices, so I feel responsibility for that.  That is why I feel so sorry, grateful and compassionate toward her.


To celebrate our 30 years of marriage, we are going on a trip starting tonight and returning on Friday.  I did not take summer vacation to use the vacation for this occasion and bought a pearl necklace since it is known that pearl is the gift for the 30 year wedding anniversary.  My wife does not like necklaces so she may not wear it, but I hope she will know my heart with this gift.



황명순 2019-11-17 (일) 17:34
목사님,사모님 결혼30주년 축하드립니다.
두분의 30년 여정이 글에 아름답게 그려져있습니다.
목사님의 사모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 느껴집니다.
서로를 베려하시고 존중하시는 두분의 모습이 존경스럽고 본 받고 싶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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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2019-11-18 (월) 09:28
우왕~ 두분의 깨알같은 사랑이 30년을 지나오면서도 처음 만났던 그 교정의 라일락향기처럼 진하네요~
모처럼 떠나는 여행,
두분이서 꽁냥꽁냥... 늘 그렇게 사시듯이
또 한 편의 행복한 사랑의 시트콤 찍고 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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